EU 시작으로 일본, 한국과도 협상 개시… '관세 최소화' 방안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우방국과 무역 합의를 먼저 도출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한국, EU, 일본 등 동맹국과의 관세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시에 '트럼프 관세'에 맞불을 놓은 중국에 대해서는 엔비디아 반도체 중국 수출 제한, 미 증시 상장사 퇴출, 제품 운송 제한과 같은 '중국 고립' 전략을 전방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4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과 먼저 관세 협상을 시작했다.
엔비디아 H20칩 중국 수출 제한… 상장사 퇴출·운송제한 등 검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 워싱턴DC에서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집행위원과 첫 회담을 가졌다.
EU에 따르면, 양측은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공산품에 대한 상호 무관세를 적용하자는 EU 측의 제안과 중국산 철강 과잉 공급 문제 등을 집중 논의했다.
EU는 미국의 철강·알루미늄·자동차 관세 대응으로 차원에서 15일부터 미국산 상품에 대해 보복 조치를 하려다가 미국이 지난주 상호관세 90일 유예 결정에 호응해 조치 발동을 90일간 미룬 상태다.
일본과의 협상은 16일 시작된다.
일본 측 관세 담당 각료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미국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그리어 USTR 대표와 회담할 예정이다.
미국은 관세 인하를 고리로 일본 측에 무역적자 해소, 엔화 약세 개선, 방위 부담 확대 등을 요구하며 압력을 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과의 협상은 내주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내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워싱턴DC를 방문해 베선트 장관을 만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는 미국 측이 회의를 제안해왔다고 전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이르면 내주 방미해 러트닉 장관 등 미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한국 정부는 무역 균형 추구와 비관세 장벽 해소 노력 등을 함께 담은 '패키지'를 미국에 제안해 국가 맞춤형 상호관세와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 부담 최소화를 끌어내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25% 자동차 관세에 대응해 미국산 자동차에 25% 맞불 관세를 부과했던 캐나다는 대미 관세 완화책을 발표하면서 향후 협상에 대비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15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캐나다에서 자동차를 계속 생산하면 미국산 자동차와 트럭을 관세 없이 수입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과는 본격적인 협상 국면을 전개했으나, 중국에 대해서는 압박 수단을 총동원하는 모양새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는 인공지능(AI) 칩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 H20 칩의 중국 수출을 제한했다.
엔비디아는 15일 발표에서 지난 9일 미 정부로부터 H20 칩을 중국으로 수출할 때는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고, 14일에는 이 규제가 무기한 적용될 것이라는 통지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기업이 수조원의 손실을 볼 것을 감안하고 내린 조치다.
미 언론은 대중 무역협상 압박 수단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을 증시에서 퇴출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베선트 장관은 9일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 폐지 가능성과 관련해 "난 모든 게 테이블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온라인매체 폴리티코는 이 구상이 다시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은 미국이 중국과 무역 전쟁에서 어떤 방식도 제외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논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 경제 무대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향후 진행될 70여개국과의 상호관세 협상에서 관세를 낮춰주는 대가로 중국과 거래를 끊도록 압박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국가와의 초기 협상에서는 이미 관세 장벽을 낮춰주는 대신 중국이 해당 국가를 거쳐 상품을 운송하는 것을 막고 중국 기업이 미국의 관세를 피하기 위해 해당 국가에 회사를 세우거나 중국의 값싼 공산품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트럼프 관세에 고율의 맞불 관세, 희토류 수출 제한 등으로 반격을 취한 중국은 무역전쟁 한 가운데 장관급 통상대표를 바꾸는 인사를 단행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 계면신문에 따르면,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장관급) 겸 부부장이 왕서우원에서 리청강으로 교체됐다.
달러 약세 언제까지… 금값은 또 사상 최고
글로벌 펀드매니저 61% "향후 12개월 달러 약세" 전망
달러·미 국채 금리 상관관계도 약해져
미국의 상호관세 정책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유로화·엔화 등)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한국시간 16일 오후 2시 49분 기준 전장 대비 0.598 내린 99.617로 100을 하회하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이달 들어 4% 넘게 떨어졌다.
반면 대표적 안전자산인 국제 금값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금 현물 가격은 이날 한때 온스당 3,291.81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고, 한국시간 이날 오후 2시 59분 기준 전장 대비 1.82% 오른 3,289.65달러에 거래 중이다.
달러 약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4∼10일 글로벌 펀드매니저 1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1%가 향후 12개월간 달러 약세를 전망해 2006년 5월 이후 가장 많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응답자 가운데 53%는 미국 주식 비중을 축소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따른 혼란 속에 달러화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면서 달러 가치와 미국 국채 금리 간 전통적 상관관계가 최근 3년 사이 가장 약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저인 상태라고 전했다.
최근 관세전쟁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달러 가치가 약세인 가운데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고공행진 중이다.
일반적으로 미 국채 금리 상승은 달러 강세 요인인데, 이번에는 투자자들이 달러의 안전자산 가치에 의문을 보이면서 달러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2일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한 뒤 중국을 제외하고 이를 유예하는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고조됐다.
단스케은행에 따르면 한주간 달러 가치가 2.5% 이상 하락하는 동시에 10년물 미 국채 금리가 0.25%포인트 이상 오른 것은 지난주를 포함해 최근 50여년 사이 3차례뿐이었다.
달러 약세를 유도한 미국과 주요국 간 '플라자합의'가 이뤄진 1985년 7월,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부양책이 있었던 2009년 5월에도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블룸버그는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 '엑소더스'(탈출)를 서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했고, 안드로메다 자산운용의 알베르토 갤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서서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봤다.
기술주 매도세 이어지며 나스닥 3.07%↓… S&P 2.24%↓·다우 1.73%↓
안전자산 금값은 달러 약세 겹치며 사상 최고치 경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와 관세 부과 파급력에 대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우려 표명 속에 뉴욕증시 주요지수가 16일(현지시간) 동반 급락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699.57포인트(-1.73%) 내린 39,669.39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장보다 120.91포인트(-2.24%) 내린 5,275.70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516.01포인트(-3.07%) 빠진 16,307.16에 장을 마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제한 수위 강화 여파로 반도체·인공지능(AI)주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전반적인 장 분위기가 종일 싸늘했다.
그 여파로 AMD(-7.35%), ASML(-7.06%), 엔비디아(-6.87%), TSMC(-4.68%) 등 주가가 줄줄이 곤두박질쳤다. 애플(-3.89%)과 마이크로소프트(-3.66%)도 투자자 팔자 행렬에 뒷걸음질했다.
국제 무역 질서를 뒤흔드는 '트럼프 관세'에 대한 연준 의장의 경고 역시 시장엔 악재로 작용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지금까지 (행정부가) 발표한 관세 인상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다"면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 둔화를 포함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에 거점을 둔 투자자문업체 CFRA 리서치의 샘 스토벌 최고 투자전략가는 로이터통신에 "파월 의장은 투자자들이 걱정하는 점을 확증하고 있다"며 "관세로 인한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이 고착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가격은 매수세에 힘입어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이날 오후 2시 45분 기준(미 동부시간) 금 현물 가격은 전장 대비 3.61% 상승한 온스당 3,338.43달러에 거래됐다.
금 현물은 이날 한때 온스당 3,350달러선을 찍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금 선물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뉴욕상품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금 선물이 온스당 3,355.10달러에 정산됐다.
달러화가 약세를 보인 것도 금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약(弱)달러'는 달러화로 표시되는 금값 오름세를 부추긴다.
CNBC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유로화·엔화 등)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ICE(인터콘티넨털 익스체인지) 미국 달러 지수는 미 동부 기준 이날 오후 4시 20분 전후 전장보다 0.84% 떨어진 99.37을 기록했다.
ICE 달러 지수는 100을 기준점으로 두는데, 숫자가 작아질수록 달러 선호 또한 낮아진다고 해석된다.